눈 앞에 다리 여섯개 달리고, 번들번들하고 둔탁한 검은색 껍질을 반짝이며, 종종 날개를 퍼덕이는 불청객을 보았을 때, 철학자들은 어떻게 할까?
1. 소크라테스
'네 자신을 알라!'며 바퀴벌레에게 무지의 부끄러움을 깨우치게 하고 스스로 물러나게 한다.
2. 플라톤
국가에서 시인 뿐만 아니라 바퀴벌레도 추방한다. (시인추방론)
3. 아리스토텔레스
바퀴벌레가 여기에 있도록 한 원인(운동인)의 원인의 원인의 ...을 찾기 위해 온 집안을 뒤집는다.
4. 에피쿠로스 학파
바퀴벌레를 바라보는 고통은 악이고, 그것을 죽이고 찾아오는 내적 평온은 선이기 때문에 우선 몽등이를 든다. 하지만 바퀴벌레와 눈(..)을 마주친 순간, 바퀴벌레를 보는 고통이 너무 큰 나머지 전부 포기하고 속세를 떠난다.
5. 스토아 학파
세상일은 신의 의지의 표현이기 때문에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섭리이자 운명이므로, 바퀴벌레가 나왔다고 호들갑을 떨지 않고 바퀴벌레가 나왔다는 운명에 순응하여 그와의 공존을 모색한다.
6. 아우구스티누스
처음에는 엄마한테 죽여달라고 말하고 조로아스터교로 도망가지만 신부가 되어서 돌아온뒤 "존재하는 바퀴벌레는 악이 아니라 선"이라고 주장한다.
8. 아벨라르두스를 비롯한 유명론자들
바퀴벌레라는 이름이 있어서 이 불청객을 바퀴벌레라고 부르는 것이라면, 천사와 악마라는 이름도 그 가설적 존재를 전제하는지 토론하기 시작한다.
7. 토마스 아퀴나스
바퀴벌레를 때려 잡으면 자신이 잡은 이 바퀴벌레의 영혼은 육체를 잃어버려도 그 바퀴벌레의 본성을 유지하는 건지 아니면 바퀴벌레라는 형상에 포섭되는지 고민한다.
8.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바퀴벌레 안에 있는 영혼의 불꽃을 발견하고 형재애를 느낀다.
9. 베이컨
바퀴벌레 속에 눈을 가득 채워 넣어 냉장하는 실험을 하다가 독감에 걸려 죽는다.
10. 데카르트
자신 안에 지각되는 바퀴벌레라는 관념은 오직 나 안에서만 관찰이 되는데, 이러한 관념은 종종 자신을 속이기도 하고 바퀴벌레가 나오는 생생한 꿈을 꾸고 있을 수도 악마가 환영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자신은 외부에 실재로 바퀴벌레가 있는지 알 수 없으며 결국 "나는 (바퀴벌레를)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만족한다.
11. 스피노자
자신과 바퀴벌레는 신이라는 유일 실체의 부분적인 양태일 뿐이므로, 바퀴벌레에 대해 드는 혐오를 버리고 바퀴벌레 안에 들어있는 내적 본성을 명상한다.
12. 라이프니츠
자신과 바퀴벌레는 소통할 수 없는 모나드이므로, 자신은 바퀴벌레를 죽일 수 없고, 바퀴벌레의 모나드 안에도 모든 세계, 심지어 자신도 들어있음을 직관한다.
13. 로크
눈앞의 둔탁한 벌레와 자기 관념의 바퀴벌레가 일치하는지 귀납적으로 연구하기 위해서 집안에 수백마리의 바퀴벌레를 뿌린다.
14. 버클리
지각되는 것만이 유일하게 존재하므로, 자신이 머리를 돌리면 바퀴벌레는 그 순간 세계에서 사라진다.
15. 흄
자신이 바퀴벌레를 발견했다는 원인과 그래서 바퀴벌레를 때려 잡는다는 결론 사이에 필연성이 없으므로 그 필연성을 찾기 전까지 때려잡지 못한다. (흄의 이론은 아직까지 논박되지 못했으므로... 아직까지 바퀴벌레는 안죽었긔 으앙)
16. 칸트
자신의 관념 외부에 있는 바퀴벌레 그 자체는 자신이 지각하는 표상과 전혀 다른 본성의 어떤 것이기 때문에, 자신은 그 존재를 무로 만들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17. 헤겔
자아(정)가 자아를 위협하는 바퀴벌레(반)을 흡수하여 절대적 자의식(합)을 완성한다.
18. 쇼펜하우어
죽이든 죽이지 않든 인생은 고통의 바다다.
19. 니체
영겁회귀 속에서 바퀴벌레를 만나는 사건을 무한히 반복하고 어느순간 "바퀴벌레여 오라! 나는 인생을 사랑한다!"며 바퀴벌레를 무한히 긍정한다.
20. 벤담
바퀴벌레를 죽여서 얻는 쾌락과 바퀴벌레가 느끼는 고통의 감정을 숫자로 환산한뒤 죽음을 당하는 고통이 더 크다고 판단하고 죽이려는 시도를 그만둔다.
21. 밀
자신은 바퀴벌레의 자유를 침해하는 어떤 행위도 할 수 없으므로, 바퀴벌레에게 부디 집을 나가달라고 탄원한다.
22. 베르그손
자신과 바퀴벌레는 각자의 트랙을 달리고 있으므로 결코 접촉할 수 없고 때려 잡을 수도 없다.(제논의 역설 논박)
23. 샤르트르
존재는 본질에 앞서므로 자신은 바퀴벌레의 존재를 그대로 인정하고, 바퀴벌레와 자신이 만들어내는 미래에 스스로를 기투한다.
....알았어, 그러니까 누가 좀 죽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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